[태그:]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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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잉군 초상(보물), 젊은 시절 영조의 초상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연잉군 초상”(보물)이다. 21세의 젊은 영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영조가 왕세자에 책봉되기 이전에 그린 것으로 영조 때 경희궁 태령전에 봉안되었다가 정조 때 선원전으로 옮겨졌다. 불에 타서 일부가 소실되었지만 얼굴, 흉배, 관대 등이 온전히 남아 있다. 51세 때 그린 어진과 비교해서 보면 나이가 들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만 얼굴의 특징은 거의 비슷하다.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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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구한말 서울 종로에 세워졌던 비석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척화비”이다. 서울 종로에 세웠던 것을을 임오군란 이후 철거되어 묻혔다가 1915년 보신각 이전 시 발굴되었다. 척화비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대표하며, 쇄국정책은 후대 사람들이 조선의 근대화가 늦어지고, 멸망하게 된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아편전쟁 이후 피폐된 중국 청나라의 정세를 듣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당연히 취할수 있는 여러 정책 중 하나라고 보여지며 이를 폄훼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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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관해방총도 (보물), 국경을 잘 볼 수 있도록 그린 지도
ㅎ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청구관해방총도靑丘關海方摠圖”(보물)이다. 조선의 국경지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린 대형지도이다. 지도에 그려진 내용으로 볼 때 조선후기 1776년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바탕으로 그렸으나 동서보다는 남북을 길게 그렸다. 북쪽 국경지대와 해안선을 한눈에 잘 볼 수 있도록 그린 지도이다. 국경지역의 방어시설을 망라한 대형 군사지도이다. 만주지역과 일본까지 포함하여 국제적 관점에서 육상 및 해상 방어시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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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보물)
순천 선암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보물)이다. 의천(義天: 1055~1101년)은 고려시대 왕족 출신의 승려로 시호인 대각국사로 잘 알려져 있다. 송나라에 유학하였으며 중국 불교계에서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불법을 진작시키는데 불교 전적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많은 책을 수집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고려 천태종의 창시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그림으로 가로 110.2cm, 세로 144cm 크기이다. 의자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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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월천서당, 조목이 후학양성을 위해 세운 서당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월천리에 있는 ‘월천서당(月川書堂)’이다. 조선시대 고위관료를 지낸 인사나 학자들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퇴계의 제자로 유일하게 도산서원에 모셔진 월천 조목(1524~1606)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퇴계가 세웠던 도산서당이나 같은 제자인 유성룡의 병산서원, 김성일의 임천서원과 비슷한 기능과 위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임천서원이나 병산서원과는 달리 서원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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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근세관] 조선, 민의 성장과 시대 전환 (19세기)
18~19세기에는 인구의 자연증가와 농민의 계층분화가 심화되어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었다.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금속화폐가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도시민의 증가로 상품의 유통이 활발하게 되자 전국 각지에 장시와 포구가 개설되고 많은 교역이 이루어졌다. 도시의 부는 세도 가문, 상인, 하급 관료들에게 집중되었으며 이들이 새로운 도시 문화를 이끌어갔다. 유흥문화를 경계하는 정약용의 글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지방관으로서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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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근세관] 조선, 탕평과 문예부흥
18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휴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병자호란 이래로 송시열을 중심으로 계속되어온 당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영조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과 권위로 조금이나마 제압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심으로 안정화된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영.정조대를 대표하는 정책으로는 탕평책으로 대변되는 당쟁의 극복과 왕권의 확립, 균역법으로 대표되는 조세개혁을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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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근세관] 조선, 사회 재건을 위한 노력
병자호란 이후 숙종대까지는 예송논쟁을 중심으로 한 붕당정치가 시대를 대표하는 현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숙종대에는 국방의 강화를 위해서 강화산성과 돈대, 남한산성 등 오늘날 남아 있는 많은 성곽들을 크게 보강했으며,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배계층의 저항이 극심했던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시행하였으며, 상평통보의 유통같은 조치를 통해 영.정조대 중흥기를 준비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대명의리를 주장한 송시열의 상소송시열은 효종에게 올린 상소문 <기축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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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근세관] 조선, 사림의 성장과 대외관계
조선전기 성종대부터 고려말 이색이 문인이었던 김종직을 중심으로 신진관료였던 사림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림은 대체로 조선을 건국한 주체세력이었던 신진사대부에 속하지만 조선초에 벼슬에 진출하지 않고 향리로서 지방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연산군대와 중종, 명종대에 걸쳐서 여러번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16세기에는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성장하여 조선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이끌었다. 중종대 조광조가 성리학을 조선에 맞게 변형시키고 이를 현실정지에 적용하는 도학정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