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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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왕실생활] 조선 왕비
조선시대 왕비(王妃)는 단순히 국왕의 아내를 넘어, 유교 국가인 조선의 국모로서 막강한 법적·정치적 지위를 누렸다. 왕비는 내명부와 외명부의 보필을 받으며 궁중 내정을 맡았고, 왕실 계승을 책임졌다. 또한 국왕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할 경우 왕위 계승자를 지명할 권한이 있었으며, 대비가 되면 수렴청정을 통해 강력한 정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왕실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끊이지 않았으며, 왕비는 내.외명부에 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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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조선 국왕] 국정 운영과 기록 문화
조선 국왕은 교적 이념 아래 신권(臣權)과 조화를 이루며 국가를 운영했다. 조선 전기 세종 때까지는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중시하여 왕이 의정부에 실무를 맡기고 보고받는 ‘의정부 서사제’였는데, 반정을 통해 집권한 세조 이후에는 각 부서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방식인 6조 직계제로 운영되었다. 왕은 매일 신하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나랏일을 논의하는 경연에 참석했으며, 이를 통해 정책을 비판하거나 제안하는 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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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조선 국왕] 국왕의 상징
고궁박물관 2층 1번째 전시실인 “조선의 국왕”이다. 국가의 정점이자 상징이었던 국왕이 조선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조선시대 왕은 국왕을 상징하는 존재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중요한 존재였으며, 그들의 업적은 후손들에게 전달되어야 했다. 왕의 즉위부터 사후까지, 왕권을 상징하는 다양한 의례용품과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물로는 왕을 상징하는 인장인 어보, 어보와 함께 올리는 책, 왕이 공식행사나 일상생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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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백자, 흰빛의 여정
삼성미술관 리움 3층는 <흰빛의 여정>이라는 주제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를 전시하고 있다. 백자와 분청사기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이다. 유교사회를 추구했던 조선사회에서는 순백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순백자는 검소와 절제를 중요시하는 사대부들의 취향과 맞아 떨어졌다. 분청사기는 백토 바탕에 검은 철 안료로 그림을 그려 넣거나 칼로 무늬를 새겼다. 지역 장인들이 만든 분청사기는 자유로운 기운과 생명력을 담고 있다. 분청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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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특별전, 새나라 새미술] 불교 경전, 부처의 말씀을 전할 것이니
조선 건국 이후 유교 중심의 사회로 바뀌었지만, 왕실과 사찰에서는 불교 경전의 보존과 인쇄를 통해 신앙적 전통을 이어가려 했다. 세조 때에는 <능엄경언해>, <금강경언해>, <법화경언해> 등 불교 교리를 한글로 풀이하여 백성들도 읽을 수 있게 한 최초의 불경 언해본을 발간하여 한글의 발전과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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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특별전, 새나라 새미술] 불교미술,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불교는 억압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민간 신앙과 왕실의 후원 속에서 불상 조성은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특히 15세기 태조·태종·세종대의 왕실 발원으로 불상이 제작되기도 했다. 억불정책 속에서도 불교 조형 전통의 맥을 잇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조성된 불상들은 화려함보다 내면적 신앙심과 단정한 미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전북 익산시 낭산면 심곡사에 있는 칠층석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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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해당소상팔경시첩(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비해당소상팔경시첩(보물)>이다. 1442년(세종24년)에 안평대군이 송영종의 팔경시(八景詩)를 모탑하고 팔경도를 그려 판각한 다음 고려 이인로와 진화의 팔경시를 옮겨 적었으며, 조선전기 인물 19명의 시문이 실었다. 김종서·성삼문·박팽년·신숙주·안지·강석덕·최항·남수문·신석조 등 조선시대 인물들의 글은 친필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의 글씨가 남아 있지 않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아름다운 여덟 풍경을 읊은 시, 신숙주 시, 김종서 시,안평대군 이용이 중국 후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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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특별전, 새나라 새미술] 사람과 사람, 인문으로 기록되다.
초상화는 당대의 상류층에서 가장 많은 공을 들여서 그렸던 그림이다. 서양 회화에서도 레오나르드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많은 걸작들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왕의 초상을 그린 어진에서부터 관복을 입고 그린 사대부들의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들이 그려졌다. 인물화는 작가의 주관보다는 현재의 사진과 같은 의미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주 세밀하고 정성스럽게 그려졌다. 인물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 인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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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특별전, 새나라 새미술] 산수화, 자연에서 길을 찾다
동양화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자연을 그린 산수화이다. 삼국시대의 무덤벽화나 백제의 산수무늬가 그려진 벽돌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아주 오래전 부터 산수화가 그려졌다. 산수화는 전문화가인 도화서 화원 뿐만 아니라 사대부계층에서도 많이 그렸다. 이는 자연의 이치를 담은 마음속의 산수를 그리는 중국 남종화(南宗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안견(安堅, ?~?)으로 대표되는 조선전기 화가들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담은 산수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