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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박물관

  • [청주박물관] 불교공예, 금속으로 삶과 불교를 꽃피우다.

    불교공예는 부처의 장엄, 공양,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를 가리킨다. 불교공예는 그 쓰임새에 따라 범음구, 공양구, 장엄구, 밀교법구 등이 있다. 공양구는 공양을 올릴 때 사용되는 도구를 만한다. 공양물로는 향, 등(燈), 꽃, 음식 등이 있으며, 공양구로는 촛대, 향로, 정병 등이 있다. 범음구는 소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물들을말한다. 종, 금고, 경자 등 소리를 내어 시간을 알려주거나 의식의 진행을 도와주는…

  • [청주박물관] 금속으로 변화된 삶, 삼국시대 이후

    충북지역은 백제가 한강유역에 확고한 세력을 갖추었던 4세기 충북지역은 백제의 세력권에 있었지만, 5세기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남한강 유역은 당대 최대의 격전장이 되었고, 백제는 점차 이지역에서 고구려, 신라에 밀려나게 되었다. 백제는 마한의 작은 세력이었지만, 토착세력이라기보다는 북방 고구려의 일파가 남하한 세력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철기제작기술과 기마병 운용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서남지역에 해당하는 마한지역을 복속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 [청주박물관] 도구의 등장과 발전

    남한강과 금강이 흐르는 충북에서는 채집생활을 했던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동굴유적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제천 점말동굴, 단양 금굴, 청원 두루봉 동굴 등이 구석기인이 살았던 대표적인 동굴유적이다. 동굴유적은 구석기인들이 추위를 막기위해 석회암이나 화산암지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굴에 머물렀던 곳이다. 사람뼈.석기.뼈연모.동물화석 등 당시의 생활상과 환경 자료들이 출토되었다. 구석기인들은 이동생활을 하였으나 때로 막집과 동굴에 살고, 식량채집과 사냥을 위해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주먹도끼는…

  • [일본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 마키에蒔絵 장인이 만든 혼례품

    도쿠가와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혼례조도류婚礼調度類는 일본을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히며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이다. 이 유물들은 1663년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딸이 오와리번 2대 번주 도쿠가와 미츠토모와 결혼할 때 가져온 혼수품들이다. 마키에는 칠기의 표면에 옻칠로 그림이나 무늬, 글자 등을 그리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금이나 은 등의 금속 가루를 뿌림으로써 기면에 정착시켜서 만든 칠기를 말한다. 에도시대 마키에蒔絵…

  • [진주박물관] 경상우도, 조선 사림 세력의 산실

    지리산 동쪽 남강 주변에 위치한 산청, 함양, 진주 일대는 낙동강 상류 안동 지역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들의 세거지로 선호되었으며, 양반문화가 발달된 곳이다. 영남사림을 이끌었던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정여창, 김일손 등을 배출하였으며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사림을 이끌었던 남명 조식이 그 학풍을 이어왔다. 실천적인 이지역의 학풍은 곽재우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많은 의병장들을 배출하였다. 특히, 남명 조식은 벼슬에 진출하지…

  • [진주박물관] 임진왜란의 기록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조선, 왜, 명나라가 모두 참전했던 국제적인 전쟁이었다. 명나라는 전쟁에 소요된 많은 비용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었으며, 일본도 많은 군사들이 동원되면서 경제적.군사적으로 많은 출혈이 있었다. 동북지방 군벌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아 큰 손실을 입지 않았고,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주도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일본을 재통일하고 에도시대를 열었다. 조선은 직접적인 전쟁의 당사자로 많은 국민들이 전쟁으로 사망하였으며, 사회적인 인프라나…

  • [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조선의 무기들

    임진왜란은 한.중.일 3국이 대규모로 참전한 국제적인 전쟁으로 당시에 존재했던 다양한 무기들이 사용되었다. 왜군은 포르투갈로부터 전수받은 신무기인 조총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활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나지는 않았다. 왜군이 전쟁초기에 연전.연승할 수 있었는 것은 오랜 내전으로 축적된 경험 많은 군사들이었던 반면에 조선군은 조선초 이후 큰 전쟁이 많지 않았기때문 경험많은 군인들이 많지 않았다. 반면에 무기는 다양한 형태의 화포, 신기전을…

  • [중앙박물관특별전, 탕탕평평] 탕평의 길로 나아가다

    영조는 집권 후 당쟁을 해소할 것을 천명하고 각 당파의 화합을 주선하고, 각 정파의 온건론자를 중용하였다. 또한 주요 청요직에 각 정파의 인물들을 균형있게 등용하였다. 이런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되어 집권 17년차에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 성균관 정문에 탕평비를 세웠다. 영조는 당파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으나, 노론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는 근본적인 약점때문에 적극적으로 당파를 제압하지는…

  • [중앙박물관특별전, 스투파의 숲] 석가모니 상징

    석가모니의 상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지만, 불교 전통 전반에서 가르침과 성스러움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들이 존재한다. 불상이 없던 시기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얻은 장소를 상징하는 ‘보리수 나무 아래 빈자리’, 지나간 자리를 나타내는 발자국, 가르침을 상징하는 법륜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연꽃, 손의 수인手印, 사자, 정수리 돌기와 이마의 흰점 등이 여러 의미를 가지면서 석가모니를 상징한다. 보드가야Bodh Gaya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