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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중국 문명의 새벽
중국 문명은 중구의 황하 중하류에 성립한 옛 문명을 총칭한다. 신석기시대 문화로는 하남성의 츠산磁山 문화, 섬서 지방의 양사오仰韶 문화, 황하 중하류의 룽산龙山 문화 등이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다. 기원전 3,000 ~ 5,000 년 전 황하 유역에 번성했던 신석기 앙소문화(仰韶文化) 동아시아에서 가장 앞섰던 선사문화로 여겨진다. 바닥이 뾰족한 항아리와 도기가 유명하다. 룽산문화(龍山文化)는 황화유역의 신석기 말기(4,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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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박물관] 선비들의 서예
우리나라 서예는 기원전 2세기무렵, 중국의 한자문화를 수용하며 한국 서예문화 시작하였다. 삼국시대의 글씨는 중국 남북조시대 글씨 영향을 받았으며, 7세기 중반부터 당의 구양순 해서체 유행하였다. 8세기에는 저수량, 안진경 해서, 왕희지 행서 유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미불, 소식 등 중국 북송 서예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문장을 돋보이게 하거나 높이 기리기 위해 명필들의 글씨를 집자하였는데 주로 비석을 세우는데 많이 이용하였다. 전주박물관에서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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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조선시대 삶과 정신문화
조선시대 양반들은 정치를 주도하고 지역을 이끌어가는 지배세력으로 정치가이자 관료였다. 양반들은 과거를 통과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학문적 수양을 필요로 했다. 이들은 어린시절부터 유교경전을 익히고 심화하여 학자적 소양을 갖추었으며, 중앙에 진출하여 관료를 역임하며 많은 인사들과 교류를 하였다. 대구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유물로는 이 문구를 기준으로 ‘수신’을 의미하는 양반들이 과거에 진출하기 전 공부해야 했던 ‘사서삼경’을 비롯한 유교경전, ‘제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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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대구 경북의 불교문화
신라는 삼국 중 늦은 시기인 5세기 눌지왕때 고구려에 의해서 전파되었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부터 경북지역에서는 불교가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이른 시기에 사찰들이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가 먼저 전파된 경북지역에는 이른시기부터 불상이 만들어졌으며, 영주, 봉화, 안동, 군위 등 여러지역에 삼국시대 금동불과 마애석불 등이 남아 있다. 대구박물관에서는 3점의 국보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데, 구미 선산읍 봉한동에서 출토된 금동불입상 1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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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대구 경북의 고대문화] 삼국시대 꾸미개
꾸미개는 금관을 비롯하여 허리띠 관모,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 등이 있다. 신라는 금.은.금동을 이용하여 만든 다양한 꾸미개를 무덤의 부장품으로 남겨 놓고 있다. 대구박물관에서는 지역 중심지였던 대구 달성을 비롯하여 경산, 김천, 의성, 상주 등 신라의 지방세력을 비롯하여 고령, 성주지역의 가야연맹체 세력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出’자 모양의 장식을 한 금동관과 깃털모양의 금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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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대구 경북의 고대문화] 청동기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가 확산되고 정착생활이 이루어면서 큰 규모의 마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집단내에서는 사회적, 계급적으로 분화가 일어났다. 청동기시대는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했던 시기를 말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주로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청동기는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나 제사의식에 사용되는 의기로서 지배계층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평안도나 한반도 서.남해안과는 달리 고인돌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에 사용되었던 간석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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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대구 경북의 고대문화] 석기, 토기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수십만년 전으로, 그들은 식량이 풍부한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면서 동굴이나 강가에서 살았다. 낙동강 중.상류지역에 해당되는 경북지역에서는 대구 월성동, 상주 신상리 등 낙동강 주변에서 구석기 유적지들이 발견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뗀석기구석기시대 석기는 하천에서 구하기 쉬운 주먹크기의 강돌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돌을 깨뜨려 날을 예리하게 세운 떤석기를 제작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먹도끼는 돌이 뾰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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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특별전,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 토우장식 토기
토우(흙인형)란 보통 흙으로 만든 인물상인데, 넓은 의미로 동물이나 생활용구.집 등을 본떠서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을 일컫기도 한다. 토우는 주로 고대국가에서 조성한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많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무덤의 껴묻거리라고 할 수 있다. 토우가 신라에서 장송의례에 사용된 것은 5세기부터라고 한다. 토우는 죽은이가 사후세계에서도 현재와 같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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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특별전,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 죽은이를 위한 부장품
죽은 사람의 사후 세계 생활을 위해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도용, 가축.부뚜막.축사 등 생활에 필요한 기물 등이 고대 이래 많은 지역에서 껴묻거리로 묻혔다. 중국 진한대(秦.漢)에는 장례를 후하게 치르는 후장제도(厚葬制度)가 유행하면서 상류층 무덤의 부장품 종류가 많고 화려해졌다. 이전에는 옥기, 청동그릇 등의 예기와 실생활에 사용된 토기, 무기, 마구류가 주로 매장되었지만, 이후에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상을 실감나게 표현한 인물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