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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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철화매죽문호(국보), 화원이 도자기에 그린 대나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국보)이다. 조선중기에 16~17세기에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이다. 높이 41㎝의 큰 항아리로 16세기 분청사기나 명대(明代) 항아리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검은색이 나타나는 안료로 목과 어깨에 구름과 꽃잎 무늬를 돌렸다. 몸체 한 면에는 대나무, 다른면에는 매화를 각각 그려 넣었다.몸체에 그린 대나무와 매화은 그림 솜씨가 뛰어나서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화, 대나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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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군 영인정씨묘 출토 유물(국보)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는 <진양군 영인정씨묘 출토 유물>(국보)이다. 경남 거창군 북상면에 있는 진양군 영인정씨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편병.접시.대접.잔.묘지 등 10여점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묘지 내용을 통해 1446년에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편병과 묘지는 고려백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진양군 영인정씨는 조선 세조 때 언양 현감을 지낸 김윤의 어머니로 진양군은 출신지역이고 영인은 4품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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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태를 묻은 기록이 새겨진 지석과 태항아리 (보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대학교 우학문화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태항아리 및 태지석(1991)>(보물)이다. 외항아리는 높이 35.2㎝이고, 내항아리는 높이 25.1㎝ 크기이다. 태지석에는 ‘王子慶龍阿只氏胎’와 ‘皇明萬曆三年'(1575년)이라 적혀 있어 광해군의 것임을 알 수 있다. 15세기 왕실에 만들었던 백자 태항아리의 모습을 샆려볼 수 있다. 외항아리는 위쪽이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아가리 부분이 바깥으로 벌어진 형태다. 어깨 부분에는 작은 고리 4개가 달려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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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청화철화삼산뇌문 산뢰(보물)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청화철화삼산뇌문 산뢰>(보물)이다. 조선중기에 산뢰山罍라는 제기로 만들어진 백자이다. 높이 27.8m 의 큰 크기이다. 안쪽으로 들어간 아가리부분과 양감있게 벌어진 어깨, 아래로 내려가면소 좁아지는 형태는 전형적인 초기 항아리 모습을 하고 있다. 금속제기의 모습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국가 제례에서 사용된 위엄 있고 격조있는 백자 제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자산뢰로서 청화와 철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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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지’· ‘현’ · ‘황’이 새겨진 백자 사발 (국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천’ ‘지’ ‘현’ ‘황‘ 명 발>(국보)이다. 높이 11.1cm, 아가리 지름 21.1cm, 밑지름 7.9cm 내외의 순백사 사발 4점이다. 굽바닥에 ‘천, 지, 현, 황’ 글자를 새겨놓고 있다. 왕실 그릇 보관 창고인, ‘천자고, 지자고, 현자고, 황자고’에서 보관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양은 없고 유약은 잘 녹아 밝은 백색을 띠고 있다. 순백색의 고급 백자로 단정한 형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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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특별전, 조선의 백자] 청화백자
청화백자는 코발트가 주성분인 안료를 사용하여 푸른색 무늬를 그린 백자를 말한다. 청화 안료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값이 매우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 백자에 청화 안료로 그리는 일은 궁중에 소속된 전문화가가 맡았다. 따라서 조선 전기인 15~16세기의 청화 백자에는 우아한 품격을 갖춘 무늬들이 그려졌다. 17~18세 청화백자는 여백을 살리면서 간결하게 그린 산수, 사군자 등의 무늬가 유행하였다. 19세기에는 청화백자가 더욱 대중화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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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각 공예관] 구한말 조선 백자
구한말 사회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신분제가 동요하고, 서양의 학문과 기술이 유입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부를 축적한 새로운 계층은 이국적이고 화려한 백자를 선호했다. 이 시기에는 독특한 형태와 기법에 조선의 미감이 더해진 그릇과 문방구가 제작되었다. 화려한 채색 기법과 고급 장식 기법도 개발되었다. 또한 행복, 장수, 재물 같은 세속적 소망을 담은 무늬가 청화백자에 등장했다. 그러나 왕실의 재정이 악화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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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각 공예관] 조선후기 도자문화
조선후기의 백자는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결과로 백자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가 17세기말부터 다시 원래의 수준으로 질이 좋아져 순백의 백자가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18세기 전후 복구를 완료하고 경제 활동이 증가하면서 백자 수용층이 왕실과 사대부는 물론 부유한 일반 백성까지 확대되었다. 깨끗하고 기품 있는 백자가 다양하게 만들어졌고 특히 문인의 취향이 반영된 청화백자가 유행했다.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받아들여서 상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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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각 공예관] 관요 설치 이후 조선 도자기
분청사기의 전성기는 15세기로 왕실에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약 150여년간 생산되었던 분청사기는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광주지역에 관요가 설치되고 국가에서 백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중엽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순백의 백자를 선호했던 조류와 구리를 가공해서 만든 유기제품에 밀려서 역사의 무대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분청사기 철화 넝쿨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