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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그리스 로마, 유리 그릇
인류가 유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의 일이다. 초기에는 구슬처럼 착고 속이 꽉 찬 형태로 만들어지다가 기원전 1500년경 용기의 형태가 처음 등장했다. 초기의 유리 제품은 대부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1세기 대롱불기 기법이 개발되고 보편화되기 전까지, 유리는 틀을 이용하여 주조하거나, 심 주위에 유리를 감아 만들거나, 모자이크 막대를 잘라 만들었다. 이런 기법으로는 소형의 용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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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그리스 로마, 토제 등잔(기름 등잔)
오일램프는 기름을 연료로 사용하는 램프이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올리브 기름을 연료로 사용하였다. 초기 로마 시대에는 램프 생산에 금형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되었다. 대부분 원형, 다양한 형태의 노즐, 닫힌 몸체, 부조로 장식된 중앙 디스크와 충전 구멍으로 구성되었다. 후기 로마에서는 여려 개의 노즐이 있는 램프가 등장했으며 다양한 종류가 만들어졌다. 기름 등잔지중해 지역에서 등잔은 일상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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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그리스 로마, 그림자의 제국
사후 세계에 대한 로마인의 믿음은 다양하며, 철학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지식인 계층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에 대한 전통적인 돌봄과 사후 지속되는 그들의 지위는 로마 종교의 오래된 관습이다. 로마에서 죽은자들을 위한 봉헌물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기대와 신과의 교제을 기대하고 있다. 로마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공화주의 귀족들은 장례식과 사후세계에 대한 건축에 투자보다는 공공 건물 기부나 지역사회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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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서화관]불교 회화
불교 교리를 표현한 불교회화는 우리나라 회화(繪畵) 중 오래된 분야이다. 불교회화는 불상처럼 불전에 걸어놓고 예배를 올리기 위해 부처와 보살을 그린 불화(佛畵) 또는 탱화(幀畵)을 말하지만 넓게는 불전의 안밖 벽면을 장식하는 다양한 그림이나 경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 등을 포함한다. 불화는 부처와 보살을 그린 그림,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나한도(羅漢圖),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신중도(神衆圖)도 다양한 대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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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서화관] 서화 감상의 즐거움, 202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4년 <서화 감상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전시하였다. 서화(書畵)은 그림(회화)과 글씨(서예)를 총칭하는 말이다. 회화는 인간의 삶에서 창조의 결과물로 오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라고 하여 시와 그림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림에는 작가의 감정과 사상이 담겨 있으며, 그런 그림을 통해 예술적인 소양이 길러진다. 서예는 문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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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서화관] 서예, 문자의 예술
우리나라 서예는 기원전 2세기무렵, 중국의 한자문화를 수용하며 한국 서예문화 시작하였다. 삼국시대의 글씨는 중국 남북조시대 글씨 영향을 받았으며, 7세기 중반부터 당의 구양순 해서체 유행하였다. 8세기에는 저수량, 안진경 해서, 왕희지 행서 유행하였다. 또한 이시기는 서예가 김생 활동하였다. 김생의 글씨는 후대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시대까지 계속 유행했다. 고려시대에는 미불, 소식 등 중국 북송 서예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문장을 돋보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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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각 공예관] 조선후기 도자문화
조선후기의 백자는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결과로 백자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가 17세기말부터 다시 원래의 수준으로 질이 좋아져 순백의 백자가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18세기 전후 복구를 완료하고 경제 활동이 증가하면서 백자 수용층이 왕실과 사대부는 물론 부유한 일반 백성까지 확대되었다. 깨끗하고 기품 있는 백자가 다양하게 만들어졌고 특히 문인의 취향이 반영된 청화백자가 유행했다.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받아들여서 상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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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각 공예관] 관요 설치 이후 조선 도자기
분청사기의 전성기는 15세기로 왕실에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약 150여년간 생산되었던 분청사기는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광주지역에 관요가 설치되고 국가에서 백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중엽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순백의 백자를 선호했던 조류와 구리를 가공해서 만든 유기제품에 밀려서 역사의 무대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분청사기 철화 넝쿨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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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각 공예관] 조선의 도자기, 분청사기와 백자
분청사기는 고려 상감청자를 계승한 도자기제작기법으로 ‘백토로 분장한 회청색의 사기’라는 뜻으로 20세기에 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형상 고려청자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쇠퇴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투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면모를 보이는 등 한국적인 미를 잘 담아내고 있다. 분청사기는 고려말 청자의 주요 생산지였던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의 가마들이 왜구의 침략으로 피폐화되면서 장인들이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분청사기는 15~16세기에 걸쳐 약…
